Light of Silence | 조영아

정경식 Jung Gyungsik

Miyuki Kido

Wang Lala

Wang Lala
더이상 강렬한 무언가에 사로잡히기만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원래 의도’에 철저히 빗겨나가더라도 오랜 시간동안 지긋이 바라보고, 혼잣말 같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나도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것은 그 첫만남과 첫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은 것이 조용한 것은 아니다. 색이 없고 빠르지 않은 것이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가벼운 것이 무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눈에 스쳐지나가면서 머리 속에서도 스쳐지나간 것들이 가까이, 긴 시간 들여다 볼 수록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몰라’라고 말한다. ‘나 실은 말야..’ 라고 속삭인다.
가냘픈 실 하나가 있다. 큰 바위를 뚫은 얇고 검은 한 줄. 부드러워 보이는 실이 저기에 붙어 있으니 꼭 단단한 콘트리트 건물의 뼈대가 되는 철근처럼 보인다. 저 녀석은 어떤 초능력이 있어서 저 바위에 자기만한 틈을 내었나. 아, 아니다. 돌처럼 보이는 바위는 바위가 아닌 것은 아닐까? 사실은 아주 말랑말랑하거나 보들보들하거나 보이지 않는 구멍이 숭숭 나있는 것 아닐까? 가만히 응시하다보면 한 장의 종이에 올려진 돌과 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여기 없고 굳고 딱딱한 돌을 뚫고 지나가는 실 한 줄만 보일 뿐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야기가 있던 간에 연약해보이는 실 한 줄이, 겨우 실 한 줄이 뾰족하게 웅장하다
여기 또 다른 실’들’이 있다. 본래 연결되기 위해 직조된 얇고 탄탄한 실은 본래 엮이지 않을 다른 선과 면에 엮여지고 찢겨진다. 가느다란 실과 얇다랗고 반투명한. 면은 자기들끼리 엉겨 붙고 또 밀어내 공간과 모양을 만든다. 한 줄기 빛이 옅은 면들을 통과하면서 닮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만듦 당한 것 아니라 원과. 원이 만났다 헤어지며 또 다른 그림을 만들어 내는 중 같다. 그러니까, 그것들은 움직이고 있다. 실제로 내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면 내가 움직일 때마다 그들도. 한 면이 되었다가 떨어졌다 한다. 내 시선에 따라, 내 걸음에 따라, 내 존재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의 모양을 포착한다.
몇 가지 색의 끈으로 엮인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은 이웃 동그라미와 단단하게 묶여있다. 가지 각색인 것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몸안의 세포를 꺼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움직인다. 살아있다. 동그라미를 이어주는 선들은 관절 혹은 근육, 이어지고 얽혀있는 붉고 푸른 끈들은 혈관이다. 동그라미의 집합은 어디론가 달려나가고 있다. 명백히 멈춰있지 않다. 붉고 푸른 혈관 아래 반투명한 ‘끈’이 촘촘히 짜여있다. 한 줄 한 줄은 투명하다. 하지만 겹쳐지면 투명하지 않으니 결국, 투명하지 않다. 존재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의 집합에서 밀도가 느껴진다. 분명히 탄탄하다. 피부의 껍질일까? 혈관과 근육에 감춰진 뼈대일까?

Charity Malin

Charity Malin
정지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움직임이 있다. 쏟아지지만 아무것도 쏟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하게 쏟아지는 중이다. 움푹 담겨진 새하얗고 고운 입자들이 아슬아슬하고 포근하게 안겨있다. 중력에 의한 당연한 흘러내림과 느슨한 주름은 무엇보다 의도를 갖고 흐르지 않고 있다. 침대 커버와 천 가방처럼 보이는 익숙한 재료는 하얀 벽 위에서 미묘한 부피감과 질감, 그리고 빛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를 통해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겉으로는 움직임이 없는 듯 보이지만, 이들은 묵묵히 중력의 힘과 그에 반하는 정지의 상태를 동시에 보여준다. 움직임을 멈춘 채 흘러가고 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호흡하지 않는 것이 죽어있는 것은 아니다. 소리가 없는 것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요한 공간 안에서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들이 없다.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들이 없다.
20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