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에서 만납시다 | 김예람 (더+보기×부기우기÷우기기)
작가 임미라
작가 임미라
작가 임미라
영원순환고리
김예람
사과를 깎으려던 어느 날
나는 꼭지의 끝에서
나무의 흔적을 발견했다
꼭지는 작고 딱딱하고 다갈색이다
언젠가 이 붉은 열매는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나무의 부분이었던 사과가
분리되어 접시에 도착했다
칼로 꼭지를 도려내려다가
멈추고 생각했다
이 꼭지는 어디로 자라날까
답을 알 수 없다면
여기서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생각해보았다
끝은 또 하나의 시작
열매는 또 하나의 씨앗이 되어 심긴다
꼭지 끝에서 허공을 향해 뻗어나가는
나뭇가지는 중력을 거스른다
아무런 저항 없이
공기 중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다
이번 새싹은 어느 방향을 향해 틔워볼까?
그것이 열매의 방향을 향해 있대도
사과는 괜찮다고 이야기 한다
열매와 씨앗은 다르지 않기에
모든 뿌리는 제 방향을 향해
또 다른 열매를 꿈꾼다
작가 최기영
작가 최기영
Transparent Faith
김예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낡은 부대로 족하는걸요
찢어진 결의 천 조각 너머로 비치는
빳빳한 천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선물해주는 어떠한 감각
레이어 너머의 레이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지어지는 과정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감추어진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
포토샵을 해본 적이 없는 신도
이파리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2000년 전에 본 적이 있겠지요
불투명해서 투명함이 온전히 빛나는
어설픈 제자인 나는
낡은 부대를 기꺼이
새 부대 위에 덧대겠습니다
*마태복음 9:17
*시편 23:5
2024.12.
김예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