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terly | Uncovered | Undying | Universe  완전히 드러난 영원한 우주
 어떤 흔적들은 마치 누구에게도 읽혀질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 남겨진 것처럼 보인다. 또는 철옹성 같은 성벽을 쌓아올리고 조용하고도 화려하게 폭죽을 터트리는 외딴섬의 축제인 듯 보인다. 때로 그것은 이름 없는 문장으로 남고 찬란한 파편처럼 흩어져 손에 닿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흔적으로 남은 형태를 거꾸로 추적하면 누구든 읽을 수 있는 길로 되돌아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시선에서부터 되감기 하면 모두가 머무를 수 있는 집에 도착하게 된다. 수많은 흔적이 교차하며 공존하는 이곳은 무한한 절망도 폭발하는 환희도 없이 존재하는 자를 반긴다. 그리고 말한다. 여기 그것이 남아 있다고.
불가항의 힘 앞에서 : 장민혁 Utterly
<무제3 untitled3>, 장민혁, 2024, 패널 위 우레탄폼,철, 97x145.5x약25(cm)
<무제3 untitled3>, 장민혁, 2024, 패널 위 우레탄폼,철, 97x145.5x약25(cm)
<무제3 untitled3>, 장민혁, 2024, 패널 위 우레탄폼,철, 97x145.5x약25(cm)
<무제3 untitled3>, 장민혁, 2024, 패널 위 우레탄폼,철, 97x145.5x약25(cm)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며 인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어떤 법칙에 가로 막힌 때를 회상한다. 붉은 녹이 스며든 표면, 부식된 형체. 녹슬어 버리고 마는 시간처럼 낡아지기 마련인 그의 얼굴을 마주하면 그 언젠가의 무력감이 찾아온다. 두려움은 어떤 사실을 알고 있을 때만 찾아온다. 시간은 결국 너덜해지고 점차 부식되어 사라질 것이다. 일은 벌어질 것이며 그저 목격할 것이다. 피하거나, 막거나, 예방할 수도 없는 힘에 휘둘릴 것이다.
 이 육중하고 단단한 압력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나는 어떤 사실을 알며 내가 안고 있는 불안함은 어떤 진동일까. 두려움이 찾아오면 그제서야 실체를 탐색한다. 거울을 마주선 듯 동공과 혓바닥을 관찰하며 불가항력에 맞서기를 시도한다.
서로를 죽이며 탄생하며 : 장새샘 Uncovered
<주름, 점 Wrinkle, Mole>, 장새샘, 2024, 양모펠트, 58x34(cm)
<주름, 점 Wrinkle, Mole>, 장새샘, 2024, 양모펠트, 58x34(cm)
<주름, 점 Wrinkle, Mole>, 장새샘, 2024, 양모펠트, 58x34(cm)
<주름, 점 Wrinkle, Mole>, 장새샘, 2024, 양모펠트, 58x34(cm)
 죽은 피부의 껍질을 긁어낸 적이 있다. 갈라지고 움푹 패인 그곳으로 다시 피가 모여든다. 피가 흐르는 피부는 부딪히고 갈라지고 스며들며 저마다의 주름을 만들어간다. 벗겨진 표면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껍질 아래 있는 물결을 선명하게 한다. 출혈은 탄생의 일부이며 존재의 작용과 반작용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흠집을 남기며 유산을 축적하고 파괴하며 회복한다. 끝도 없이.
 구불구불한 길은 교차하지 않는다. 영원히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높낮이를 같이하며 흘러간다. 주름 사이로, 표면 위의 틈 사이로 손가락 하나를 넣어본다. 구부러진 혈관은 또다른 피부를 감싼다. 조만간 바깥쪽인지 안쪽인지 그 사이가 간지러울 것이다. 당분간은 아프지 않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곳으로 : 한수연 Undying
<레뎀티오 3 Redemtio 3>, 한수연, 2024, 캔버스 위 유화, 65.6x100.5(cm)
<레뎀티오 3 Redemtio 3>, 한수연, 2024, 캔버스 위 유화, 65.6x100.5(cm)
<레뎀티오 3 Redemtio 3>, 한수연, 2024, 캔버스 위 유화, 65.6x100.5(cm)
<레뎀티오 3 Redemtio 3>, 한수연, 2024, 캔버스 위 유화, 65.6x100.5(cm)
 자주 완전히 떠날 수 없는 모든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기를 희망한다. 이 세계의 법칙은 피로하고 아직 나지 않은 상처는 이미 따갑다. 누군가는 나를 구원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는 관조하며 직시하는 또다른 나. 찰나 눈을 감지만 시선이 있어야 할 곳을 쉼없이 찾는다. 단절을 꿈꾸지만 정확하게 갈 곳을 알고 있는 눈동자가 기꺼이 이곳에 머물러 있음을 증명한다.
 소멸을 기도하며 기어이 혼탁함을 끌어안고 이 세계를 똑똑히 마주한다. 강렬한 색채와 불타오르는 광경은 겹겹이 쌓여버린 불길한 장면과 같다. 보이지 않는 기억과 만져지지 않는 경험까지도 엉겨 붙어 희미한 공간 속에서 길을 찾는다. 그러나 알다시피 탈출구는 없습니다. 생애 영원한 격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곳이 끝내 내가 있을 곳이라는 것을 압니다.
무수한 점들을 쌓는다. : 정재훈 Universe

<백선 해바라기 The Black Sunflower>, J.Martin, 2022, pen on canvas, 40x40x2(cm)

 해바라기를 털면 크기도 모양도 상처도 다른 길다란 씨앗들이 무수히 쏟아진다. 흩어지는 알알들은 끝없이 쌓여가는 잉크의 자취를 따라 무한히 반복되는 작은 선들과 점들과 연결된다. 점은 찍고 선을 긋고 색을 채우는 행위는 형상의 구축이자 하나의 의식처럼 반복된다. 자아가 팽창한 줄기는 주변을 태우고 본연의 색으로 물들임과 동시에 스스로 빨려 들어간다.
 태양을 중심으로 모양을 바꾸고 크기를 바꾸는 생명체는 제각각의 태양을 자기 안에 품고 있다. 연약한 점과 선의 집합은 검은 태양과도 같다. 이파리의 흩날림이 태양의 우글거림을 감싼다. 떨리는 잎맥과 꿈틀거리는 검은 선들은 고요하게 얽히며 서로를 대신해 다시 태어난다.
 이곳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형성된 흔적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가장 선명한 순간을 붙잡고 때로는 형체를 무너뜨리며, 때로는 보이지 않는 질문을 반복하며. 포착된 세계는 가만히 들여다보고 상상하는 사람에게만 역사를 들려준다. 자국을 남긴 길을 따라 가다보면 땅은 퇴적되고 새로운 길을 얻는다. 읽히고 해독된 감정은 주인을 옮겨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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