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에서 만납시다  |  조영아
 수많은 사람들. 한 군데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선들. 움직이는 눈동자와 자꾸만 늘어나고 쌓이는 표정들. 넓게 퍼지고 흩날리는 마음들. 얼마나 많은 모습을 보아야만 모든 장면을 만날 수 있을까. 끝을 알 수 있을까. 끝이 없는 이야기에서 끝을 찾으려 애쓴다.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고, 손가락을 까딱.까딱, 가슴팍을 오르락 내리락. 끝의 순간에 닿았을 때 정작 내가 어느 끝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생존이라는 순환 안에서 돌고 도는 반복 속에서. 뫼비우스의 띠 같은 삶 중의 삶의 굴레에서. 인간이 알 수 있는, 볼 수 있는 최대 숫자의 얼굴을 보고 싶다. 긴 끈을 잘게 잘게 채 썰어 없애버리고 싶은 조급함. 허무한 욕심은 무한 굴레를 마주한 탈진감의 동의어.
 이렇게나 길고 긴, 지점을 알 수 없는 끝의 이야기에서 왜 이렇게 순식간에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했을까. 1년을 채 채우지도 못한 채로. 불완전한 시간. 불완전한 채로. 그 짧은 시간은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나 많은 유산들을 쥐어준걸까. 땅과 흙의 피부, 침과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태어났다. 심지어 바다와 육지에 경계까지 똑 닮게 태어났다. 땅이 찢어진 사이는 바다가 들어서는 틈. 경계의 찟김은 이면을 드러내는 입구가 된다. 찢어진 상처의 갈라짐을 뚫고 그 얼굴들이 쏟아져나온다. 균열을 내지 않으면 구멍을 파지 않으면 틈새를 찢어내지 않으면 무엇도 존재할 자리가 없다.
 아마도 영원히, 적어도 영원이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그 순간까지. 얼굴들 틈에 끼어 빽빽한 밀도 속에 갇혀 살 수 밖에 없겠지. 틈에서 태어나 틈을 채우고 다시 틈을 만들며 틈 속에서 죽을 수 밖에 없다면. 영원이 없는 것처럼 끝도 없이. 그리하여 모든 얼굴들을 몸통으로 팔뚝으로 종아리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내 한 몸이 모든 얼굴의 집이 될 수 있다면. 육지를 침식하는 바다. 바다의 끝은 언제나 육지. 무한하게 이어지는 땅처럼 모든 파편을 녹여 삼킬 수 있..다…면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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