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laid | Observation | Ongoing | Orbit 겹쳐진 관찰이 나아가는 궤도
Overlaid 은지민

<멀리 오래 보는 바다 스터디 001 Sea Study: Viewing from Afar and for Long 001>, 은지민, 2024, 필름지,인쇄지,아크릴,색연필,털실, 50x50(cm)
몸을 가르는 물들은 투명하고 연약하게 다시 나를 덮는다. 파도의 기억은 여태 마주했던 바다만큼 얇게 나뉘어 다른 장소의 결을 남겼다. 발을 담그면 물결은 미꾸라지처럼 발가락 사이를 스친다. 기억은 때로 쉽게 찢어질 듯 도망가고, 때로는 여름 홑이불처럼 부드럽게 달라붙는다.
기억을 끌어 모아 보니 어디엔가 존재할지도 모를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얇게 절단된 바다가 엮이고 겹쳐지면 틈 사이로 공기가 스며든다. 부서진 파도가 다시 모여 무한히 파도를 이루고 너른 가슴에 발생하는 기포는 숨의 성질을 닮았다. 흩날리는 파도 파도…과거를 들춰보는 행위처럼 빛을 받는 순간 표면은 눈부시게 반짝인다.

<멀리 오래 보는 바다 스터디 001 Sea Study: Viewing from Afar and for Long 001>, 은지민, 2024, 필름지,인쇄지,아크릴,색연필,털실, 50x50(cm)

<멀리 오래 보는 바다 스터디 001 Sea Study: Viewing from Afar and for Long 001>, 은지민, 2024, 필름지,인쇄지,아크릴,색연필,털실, 50x50(cm)
빛을 비추면 투명한 물에도 그림자가 생긴다. 빛이 기울면 그림자도 늘어지고 얇아지고 짧아진다.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도 부드럽게 흐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낡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가까이 또 멀리 언젠가의 하루에 잠시 방문했다가 또 금새 퇴장한다. 표면 위를 떠도는 그림자에 손을 뻗으면 나의 손가락은 입구가 되고 그림자는 몸으로 흡수된다. 물의 뒷면을 주목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플로팅 씬 Floating scene>, 은지민, 2025, 필름지,인쇄지,아크릴,털실,색연필, 100x50(cm)

<플로팅 씬 Floating scene>, 은지민, 2025, 필름지,인쇄지,아크릴,털실,색연필, 100x50(cm)
어느 날은 바람이 만든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를 자처한다. 두드릴 수도 쓸어 내릴 수도 없는 나만의 동굴에서 오로지 몸으로 압력과 속도를 거스른다. 깊은 곳으로 침투하는 긴장감과 온몸을 감싸는 아늑함이 공존한다. 솟아오르고 흘러내리며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물의 벽은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고 깊숙히 들어갈수록 세계는 고요해진다.

<플로팅 씬 Floating scene>, 은지민, 2025, 필름지,인쇄지,아크릴,털실,색연필, 100x50(cm)
잘게 잘린 종이들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마신 물과 스친 바람이 내 것이 아니듯. 무의식이 남긴 발자취는 소유의 경계를 넘어서고 나도 이곳에서 그곳의 숨을 삼킨다.
2025. 2
조영아 @aroze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