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Silence | 김여준
🔉 Shadows - Sam Riney, Barry Coate & jerry kalaf
<Light of Silence 침묵의 빛>
빛은 소리 없이 온다. 빛이 나를 거쳐 당신에게 도달할 때, 빛이 당신을 거쳐 나에게 도달할 때. 우리는 비로소 대화한다. 말없이 침묵으로. 인간의 영생을 말하는 시대. 그보다 이전부터 우리가 만든 사물은 우리보다 더 오래 존속해 왔다. 사물에 의해 규정되는 인간의 삶. 호흡을 해야만, 광합성을 해야만 보다 ‘생명다운 것’이 아니게 된 시간. 시선이 전복된다.
우리 앞에 사물이 있다. 작품이 그려내는 사물과, 사물 그 자체로서의 작품. 우리는 스스로의 시간을 평균으로나마 어림잡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사물에 대하여서는 그것의 시간을 단언할 수 없다. 이들이 숨소리와 생동 없이 온몸으로 만들어내는 고요함은 빛을 경유하여, 어쩌면 이 사물들보다 먼저 사라질 우리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 고요함은 우리가 지닌 어떤 본능적 감각과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바깥의 것으로서 가장 가까이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겸허해진다. 시선의 객체로, 눈앞에 놓인 존재에 의해 말없이 관찰된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고 들려오는 것에 응답하는 것뿐. 이 숙연함이 마치 명상 같다.
침묵의 물성

정경식

정경식
깊은 심연부터, 얕은 파도의 해안가까지.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신비로운 색은 돌로 추정되는 물체의 차원을 바꾼다. 어디로부터 왔나, 어디로 가고 있나, 말 없는 무채색 사이 새로운 서사를 부여한다. 견고한 액자 안쪽과 마주한 화선지는 자신보다 무거운 것을 안아 들었다. 초점이 흐려진 시야 사이에 까끌거리는 촉감이 같이 느껴진다. 화선지는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 모인 장소다. 어떠한 역학 관계를 이유로 액체는 어디선가는 번져 흐릿해지고 어디선가는 뭉친다. ‘미시적 우연들의 장’에 ‘고르게’ 칠해진 색과, 형태의 테두리 안으로 번져 채워진 색은 색감과 질감으로 대비를 만든다. 뒤로 더 깊어질 수 없던 평면 위에서 미시적 우연들에 저항하지 않으며 시간으로 쌓아올린 밀도. (정경식)

Miyuki Kido
아래서부터 표면으로 피어오른 거품처럼 원형 군집의 모양새는 마치 생명체 같다. 거대한 표면이 미묘하게 비틀려 평면의 표면이 3차원의 부피를 확보한다. 공간이 생기고 숨을 쉬고 구멍으로 앞뒤 세계를 관통하여 연결한다. 나일론 스타킹이라는 일상적 소재는 이미 형태를 갖춘 것의 표면을 충실히 감싸던 것을 넘어선다. 이러한 변형과 초월의 발견을 비웃듯 바로 뒤편 벽에는 킨츠기 기법으로 엮인 세 개의 원형이 벽에 가까이 붙어있다. 그곳이 변하지 않는 자신의 자리인 듯. 그러나 깨져 가치가 사라진 것을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이어 붙인 세 개의 원형 또한 돌출된 거대 표면과 마찬가지로 초월이다. 동시에 한 공간 안에 놓인 두 개의 차원은 서로를 전복하는 관계를 주고받는다. (Miyuki Kido)
빛이 맺히는 자리

Wang Lala

Wang Lala
원형의 테두리에는 빛이 닿아 고이고 다시 흩어지지만, 뚫린 중심부에는 빛이 멈추지 않고 지나간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도, 머무른 자리에도 내가 있다. 빛은 시간의 기준이다. 빛이 지나는 자리 어디엔가(=언젠가) 내가 있고, 있었다. 원형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주체로서 작가는 빛이 되어 작품과 관계를 맺는다. 손이 지나는 자리, 오래도록 머무는 자리, 손이 스치는 자리. 시간 안의 존재로서 작가는 빛과 관계를 맺는다. 이는 존재하는 사이, 찰나에 꾸준히 옆으로 퍼져나가며 끊이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빛과 나, 땋고 엮는 행위, 그 시간 그리고 다시 빛과 나. 투명한 낚싯줄로 만들어진 비슷한 형태의 연결고리들은 빛이 닿고, 지나치는 자리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그러나 어떤 임계의 차이로 더한 것, 덜한 것은 나눠진다. 내가 있었던들 더 이상 있지 않은 자리, 지나간 자리. 시간이 흐른다. (Wang Lala)

Charity Malin
Charity Malin
침대 시트와 가방의 흐느적거리는 표면을 타고 벽이 흘러 내린다. 구분하여 구획 짓는 것이 본질인 평평함이 본질 바깥으로 흘러내리면 이제 벽은 무엇일까. 고르지 않게 확장된 벽 표면 위에 빛이 맺혀 드러난 형상. 우리가 익히 알던 기능적 본질을 벗고도 침대 시트와 가방은 익숙함과 안정감을 준다. 본질을 버리고 본질만이 남은 풍경에도 질서가 작동한다. 가루가 들어 아래로 처진 시트의 한쪽은 공기에 기대 균형을 잡는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가방은 자신의 무게로 늘어져 있다. 가볍고 사뿐하여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물체에 묵직함이 가득 차오른다. 감각의 선입견을 넘어서는 본질로, 그 임계 지점에 가까이 다가간다. (Charity Malin)
20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