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ile | Figment | Filled | Festival 깨지기 쉬운 형상으로 가득 찬 축제
4.
Festival
황유경 작가​​​​​​​
보이지 않아서 잊혀진, 어떤 오래 된 축제를 기념하며.

<순례자들 1 Pilgrims 1> 황유경, 2024, 캔버스에 유화, 오일파스텔 162.2x130.3(cm)

세상에 나올 때 우리는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그 때에 삼신할머니가 어서 세상으로 나가도록 우리를 살짝 꼬집는데, 그 아픔에 지난날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고 울음을 터뜨린다.
(좌) <사자(使者)들 Messengers>, 황유경, 2024, acrylic on canvas, 65x49.8(cm) / (우) <순례자들 2 Pilgrims 2> 황유경, 2024, 캔버스에 유화, 오일파스텔, 72.7x52.8(cm)
가끔 나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 잊어서는 안 될 이를 잊어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쓸쓸함, 어떤 갈망, 어떤 고통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멎어지지도 않는다.
화염처럼 타오르던 고통은 질긴 흉터가 되고 그것은 성장의 증표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듯 활화산은 잠들어 있을 뿐이고, 침묵하는 화염은 우리의 우울이 된다.
사랑의 기원을 노래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기원.
콘크리트와 보이지 않는 숫자들 사이에서, 그래, 매트릭스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불안정함을 아프게 느끼곤 한다.
존재의 절반을 부정당한 현대인들의 슬픔. 영혼의 상실을 감히 노래하지도 못하는 우리들
.
<순례자들 1 Pilgrims 1> 일부
<순례자들 1 Pilgrims 1> 일부
<사자(使者)들 Messengers> 일부
<사자(使者)들 Messengers> 일부
그림은 저 편에서 나를 향해 오는, 내가 잊어버린 오랜 친구를 느끼게 한다.
우리의 본모습을 지키고 있는 절반. 육체와 기호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으로부터 나를 위해 길을 나선 이.
머리에 깃털을 꽂고 고개를 한껏 쳐 들고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가진, 사랑으로 가득 찬 살아있는 심장을 안고 오는 이.
우리는 그이를 곧바로 알아본다. 그이의 모습은 내 얼굴보다도 익숙하다. 그이에 비하면 우리가 가진 육체는 바람에 날리는 티끌보다도 더 허망하다.
그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들과 함께였고, 우리들은 세상과 함께였다. 그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걸어서 울고 있는 우리를 향해 온다.

(좌) <사자(使者)들 Messengers>, 황유경, 2024, acrylic on canvas, 65x49.8(cm) / (우) <순례자들 2 Pilgrims 2> 황유경, 2024, 캔버스에 유화, 오일파스텔, 72.7x52.8(cm)

우리를 두렵게 하고 동시에 환희에 차게 하는 그이들.
축제의 환한 빛 안에서 감각은 할 일을 잃고, 우리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2025.02. 
이라 @ila_ag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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