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에서 만납시다  |  김여준
당신의 위트는 봉인되었다. 
그러나 폐기되지는 않았다.

작가 : 이승철

“ 안심하시오. 내가 여기에 있소. ”

정교한 레디메이드. 절단난 부속품은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작품은 TV 안에 있던 부속품들로 만들어졌다.) 
대신 붉은 광으로 멋을 낸 작품은 세상을 오마주한다. 
세상을 편집해 보여주는 네모 상자가 아니라, 당신이 믿어 자리한 그곳을 액자 안에 담아둔다. 
당신의 신념, 당신이 사는 집, 당신이 머물러서 완성되는 그곳.
하지만 기억할 것. 그곳은 당신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작가 : 이승철

액자는 작품을 위해 짜이지 않았다. 미리 만들어진 액자 속으로 작품이 계획 하에 적절히 짜맞춰진다. 
당신의 위트는 여기에 봉인되었다. 그러니 웃지 마시길. 웃음이 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작가 : 이승철

그렇다고 웃음을 참기도 어려울 것이다. 
견고하고 신성한 닭의 당당함 또는 발가벗음을 보노라면. 
어, 지금 흘깃 올라간 입꼬리 딱 그 정도. 더는 웃지 마시길. 
당신의 모습이 액자를 벗어나면 다시 무표정으로, 삭막한 세상으로 돌아가시길. 
TV 뒤판에 못박힌 닭, 왕이 된 닭, 그를 경배하는 광나는 꽃 같은 건 없는 세계로. 
웃음 없이 거니는 정교한 레디메이드 속으로.
작가 : 이승철
작가 : 이승철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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