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
나는 내달린다. 수직과 수평으로. 직선에서 사선으로. 
끝없는 평행선의 개념을 추월하려고 애쓰며. 이 칸에서 저 칸으로 횡단하는 장기말. 절대성과 상대성 사이. 
궤도를 이탈하려는 무한한 질주. 초인이 되지 못한 인간의 땀방울이 튀어오른다.
눈 앞에는 끝없는 직선들. 해가 지지 않는 도시의 마천루들. 산을 파헤치고 물을 비틀어 만든 것들. 한때 우리가 사랑했던 직선들.
내가 내달리는 것은 분노 때문이다. 한 때 세상을 지배한 거인들이 쌓아올린 이곳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해소되지 못한 열정과 분열된 마음. 세계의 알력은 고통과 쾌감을 분간하지 못하고 나를 으스러트리기 위해 손가락을 벌린다.
나는 추격하는 동시에 추격당한다. 거인들의 보폭을 추격하며 동시에 그들로부터 무한히 달아나고자 한다. 희롱하듯 내달리다가는 꺾어지는 골목에서 재빨리 숨어든다. 아주 작은 숨을 쉬는 존재가 위를 향해 침을 뱉는다. 나를 창조한 얼굴을 향해 주먹을 흔든다. 그러나 나의 외침은 그들의 낡은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거야. 절망하는 찰나 시선은 외부를 향한다. 들여다 본 세계의 틈 사이로 노래하는 듯 한 풍경.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는 갓 태어난 신들. 햇살로 만든 공을 굴리는 경계를 넘나드는 어릿광대들. 눈부시게 찬란한 색채.

침을 삼킨다. 목숨을 걸고, 한 번의 뜀박질로 차원에서 차원으로 넘어선다.
나의 연속되는 포즈는 춤이 되고, 춤은 이어져 놀이가 된다. 크게 웃으며 박수하는 새로운 질서.
2025.03. 
이라 @ila_ag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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