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4+D (Human 14+ Days)  |  김여준
곰은 100일이 지나 사람이 되었다. 인간은 14일이 지나…
전시장 한쪽에는 자연, 신화, 전설이 떠오르는 작품이, 다른 한쪽에는 인간에 의한 인공적 느낌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마주 본 벽 사이로 관람자가 걸어다닌다. 여기서 저기로, 이 분주한 인간을 거쳐 자연과 인공을 오갈 수 있을까? 아마도 충분히.

원형의 원형
전설로 전해내려오는 동물이 하나 있다. 기린과 표범으로 추정되는 동물이 부리가 뾰족한 새와 십자로 얽힌 모양을 지녔다. 몸통은 전선 케이블이 휘감고 있고 빨대가 5개 꽂혔다.
이 전설 속 동물은 몸 어느 부분을 축으로 삼아 빠르게 회전한다. 회전하며 보이는 찌그러진 럭비공 같은 모양이 익히 알려진 동물의 모습이다. 그것의 움직임은 나는 것도 달리는 것도 아니다.
어디가 축인지는 지금 이 표본을 관찰하여 추론이 가능하다. 세로로 꽂힌 새와 빨대, 그것을 가로지르는 제일 큰 몸통, 그리고 케이블이 엉킨 형태. 우리는 지금 전설로만 전해내려오는 원형적 동물의 원형을 보고 있다.
이 모양이 바로 원형의 원형, 해체된 불가사의이다.​​​​​​​
Fashionable Trash
오늘은 쓰레기를 내놓는 날이다. 언제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냈던가, 꽁꽁 싸맨 불가사의가 차가운 바닥에 툭 놓인다. 누군가의 손에서 만들어진 기계로 생산된 공산품은 빠르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버려진다. 오래 되진 않았지만 많은 손을 거쳤으니 더 이상 못 쓴다, 하자.
지구에서 생성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다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구의 것이 아니라고는 더욱 할 수 없다. 오늘도 이해하지 못할 것들은 머리 한쪽 쓰레기통에 넣어두고 잊어버린다. 투명한 비닐 사이로 비쳐보이는 무언가도 번져 알아볼 수 없다. 알아보려 애쓰지 않는다.
아직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은 채 대문 밖에 앉아있다. 깔끔하게 그러나 맵시있게 동여맨 쓰레기 봉투에 언뜻 비쳐보이는 초록 얼룩이 지구라 읽힌다. 마주칠 때마다 지구라 읽힌다. 의도치 않게 생성된 레터링이 마음에 든다. … 꽤나 멋지다. … 패셔너블하다.
2024.12.
김여준 @kimyo_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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