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김여준
#0
오브오브젝트의 첫 기획단체전이 끝났다. <UFO>라는 하나의 기획으로 3주에 걸쳐 세 번의 전시를 진행했고, 12명의 작가를 만났다. 전시라면 당연히 벌어질 ‘만남’ 자체가 기획이자 기대였던 이번 전시. 우리가 기획한 만남이 무엇이 되었는지 그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일지처럼 시작이 아닌 마무리에서야 거꾸로 기획의 글을 쓴다. 
초기 기획 과정에서 오브오브젝트의 여준, 영아, 이라는 먼저 작품의 이미지를 보고 그룹을 만들었다. 기획단체전의 주제를 미리 정하지 않았다. 3명 모두 스스로가 언어에 더 익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형언할 수 없는 감각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이게 무엇인지’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재료와 기법, 소재, 그것이 만드는 ‘에너지’의 흐름을 보고자 했다는 게 모호하지만 꽤 적절한 설명일 것이다. 
물론 이 생각들이 기획 초기부터 명확히 자리잡고 있던 것은 아니다. 전시를 마무리한 후 외부 및 자체 피드백을 통해 발견한 것들이다. 의도한 ‘만남’이라는 하나의 기획의도는 모든 관계가 그렇듯 상대방 뿐만 아니라 그 앞에 선 스스로를 다시금 발견하게 하였다. 
#1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물체를 질량, 밀도, 속도, 구성물질 등으로 찬찬히 뜯어 살펴보듯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만남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조각의 집합을 ‘정체불명의, 식별할 수 없는 Unidentified’이라는 표현에 담았다. 사전 지식 없이 이곳에 당도할 사람들, 여기의 모든 게 어색할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리다가 UFO가 떠올랐다. U와 F, O로 시작하는 단어에서 우리의 첫 인상을 모았다. 첫 인상이 작품을 위한 적절한 설명임과 동시에 완전히 빗겨나간 것이기를.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미확인 비행 물체’가 되기로 하였다. 
의문스러운 단어를 전시 제목으로 선택한 것은 만남의 자리에서 나눌 이야기가 많기를, 종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길 바라는 세 명의 마음이 은연중 합하여 반영되었는지 모른다. 충돌을 기꺼이 예측하고 기대했으며 여파로 날아가던 방향이 조금 수정될지도 몰랐다. 이 만남에는 호기심이 반드시 함께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만남을 위한 여러 겹의 이야깃거리가 준비되었다. 
#2
작가들이 놓고 간 것은 그들 신체 일부를 떼어낸 것 정도의 중요도를 지녔다. 작가들은 스스로의 일부를 꺼내놓고도 그것이 어떻게 하면 더욱 유효하게 존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 어떻게 하면 더욱 존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니 상당한 어폐가 있다. 존재함에 정도가 있을 수 있을까? ‘있는데 없는 것 같다’는 감각적 어긋남을 만들어내는 원인으로 ‘의미’와 ‘동시대성’이라는 말이 있다. 
‘동시대성’을 우리의 이야기 주제로 삼는다면 우리는 무엇에 주목할 것인가를 논하게 되기 마련이다. 즉 동시대성은 현재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의 것이다. 동시대성은 늘 여기의 우리와 어긋나있을 수밖에 없다. 동시대성이란 늘 우리보다 조금씩 앞서있다. 동시대성은 미래를 함축하며 보다 의지적이다. 
동시대성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조금씩 앞선 반면, 단어의 정의定義는 언제나 우리의 발걸음 뒤에서 밭게 따라온다. 이 미묘한 시차가 혼란을 가져온다. -이고, 아니고의 경계에서 탄생한 정의가 그렇듯 단어로 선택된 동시대적 의제들은  해당함과 해당없음을 구분한다. 단어의 경계 바깥에 선 또는 섰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혼란스럽다. 저 목록에는 없고 내 안에 꿈틀대는 이것은 그럼 무엇인가. 명백히 존재하는 것들이 왜 동시대적이라 이야기될 수 없는가. 단어에 매이는 순간 당사자와 관찰자의 입장과 시각 차이에 자연 집중하게 된다. 
경계지음으로 보존되는 우리는 경계를 완전히 지울 수 없다. 단어를 뿌리치고 살 수도 없다. 이 혼란은 극복할 것이 아니다. 게다가 하나인 우리는 각자가 아니다. 맨 처음으로 앞서 있지도 않고 때문에 타인에 의해 내려진 동시대적 규정을 뒤쫓을 수밖에 없다. 이미 내려진 결정 하에서 나는 해당 여부를 존재 이유의 전부로 삼기 십상이다. 
#3
연속적이지 않은 파편의 세계. 이 안에서 혼란은 이어나가야할 것이다. 이 안에서 다시 존재에 집중한다. 점의 연속을 하나의 이어진 실선으로 감각하는 우리는 맥락을 만들고 재미난 이야기를 지어낸다. 경계를 지운다기보다 잇고 파편의 세계에서 엔트로피라는 역학적 관계, 가능성에 집중한다. 창작활동은 그런 점에서 이어나가는 행위이다. 하루를 잇고 공간과 사람을 잇는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 것일 때 의미를 지닌다. 창작자는 말과 스스로가 만든 간극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곧 나와 세계를 잇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현재의 질문은 조금 앞선 미래를 전제하고, 희망을 내포한다. 우리는 과정으로서의 만남을 열어젖혔고 응축된 존재들의 저 먼 훗날에도 멈추지 않는 시간을 만났다. 실로 동시대적인 것을 만났다.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자고 한 번 더 다짐한다. 말을 보태기보다 직접 말‘하고자’ 한다. 이미 존재한 것들 그 다음인 데에 대한 허무함, 공허함이 아니라 그저 그러함을 정서로 가져가고자 한다. 이를 알아차리고, 회귀하지 않는 단어로 존재들을 치환하는 과정은 훨씬 고되고 더 큰 노력을 요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마주칠 것들은 고뇌하는 자신만큼이나 매순간 다를 것이므로, 능수능란하기보다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해보기로 한다. 
우리는 만남을 꿈꾼다. 우리에게 만남은 존재에 대한 존중과 더 나아간 경외이다. 만날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만남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계속될 것이다. 상상하는 것보다 더 긴 시간 끈질기게. 
2025.02. 
김여준 @kimyo_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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