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ile | Figment | Filled | Festival 깨지기 쉬운 형상으로 가득 찬 축제
두 개 이상의 것이 충돌하면 무수한 조각들이 튀어나온다. 파괴의 잔해는 날카롭고 단단하게 반짝인다. 반짝이는 것은 아름답고 꿈꾸게 하지만 빛이 나는 표면은 예리해서 쉽게 닿을 수 없다. 차원을 벗어난 화려함은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하는 동시에 외면할 수 없게 한다.

김나연, 2024, 린넨에 아크릴, 10x100(cm)

김나연, 2024, 린넨에 아크릴, 10x100(cm)
김나연 Fragile
얽혀 있는 손들은 마치 한창 변신 중인 요정들처럼 눈부시게 빛난다. 매끄러운 배경 위를 유영하는 손들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변신하는 순간처럼 얼굴도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손가락들이 몇 명의 것인지, 누구의 것인지조차 모호하다. 주인을 잃은 손들은 서로를 맞잡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교감이나 교류는 없다. 서로를 붙잡으면서도 미끄러져 나간다.
요정들에게 변신의 최종 목적지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지만, 정작 완성된 모습은 없다.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되지 않은, 변화하고 있지만 도달하지 않은 손들. 이곳에 완성이나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연결된 손은 온전히 구현되지 못한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이 시대의 새로운 손과 손가락이다.

<아웃 오브 박시즈_토템 out of boxes_totem> Monogar, 2024, boxes, 35x20x50(cm)

<아웃 오브 박시즈_토템 out of boxes_totem> Monogar, 2024, boxes, 35x20x50(cm)
Monogar Figment
푸른 형상의 캐릭터는 게임 속 아바타나 디지털 피규어가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환영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디지털적 형상은 종이상자라는 아날로그 재료를 사용해 손으로 만들어졌다. 기계적인 구조, 블록처럼 조립된 형태는 공예적인 특성이 스며 들어있다. 손으로 한 겹 한 겹 쌓아 올린 물질성은 현실에서 꿈을 바라는 기도와도 같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뚜렷하게 나뉘면서도 유동적으로 흔들린다. 디지털 이미지는 현실에 존재하면서 환상의 존재로 머물고 픽셀 단위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듯한 형상은 손으로 자르고 붙인 흔적을 남긴다. 한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마찰하고 충돌하며 또 다른 형상을 만들어낸다. 경계는 설정되지만 지워지지 못한다. 영원히 그 선을 탐색할 뿐이다.

<나는 아름답다_1 I AM Beautiful_1>, 장영준, 2024, Acrylic and Gel medium, Confetti and Decoden, 60.6x72.7x5(cm)

<나는 아름답다_1 I AM Beautiful_1>, 장영준, 2024, Acrylic and Gel medium, Confetti and Decoden, 60.6x72.7x5(cm)

<나는 아름답다_1 I AM Beautiful_1>, 장영준, 2024, Acrylic and Gel medium, Confetti and Decoden, 60.6x72.7x5(cm)
장영준 Filled
형형색색의 선과 질감, 반복되는 패턴들이 겹겹이 쌓이며 하나의 화면을 이룬다. UI 디자인, 3D 그래픽, 레이어 편집의 개념이 나무판 위에서 물질적으로 드러난다. 각 층에 쌓아 올려진 요소들은 겹치지 않는 제각각의 스토리를 갖는 동시에 같은 땅에 중첩되어 한 장면으로 굳어진다.
이들은 격정적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서로를 가리고 숨기며 그 소리는 말이 되지 못하고 조각난 형상으로 부서진다. 꽉 찬 화면에서 창조되는 것은 새로운 언어가 아니라, 딱딱하게 굳어버린 거품으로 깜찍하게 덮인 파편들이다. 레이어들은 태어나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히지 못한 채 그저 서로의 위아래를 표류한다.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쌓일수록 색은 바래진다. 그것을 거부하듯이 혹은 수긍하듯이 네온 빛이 번쩍인다.

<순례자들 1 Pilgrims 1>, 황유경, 2024, 캔버스에 유화, 오일파스텔, 162.2x130.3(cm)

<순례자들 1 Pilgrims 1>, 황유경, 2024, 캔버스에 유화, 오일파스텔, 162.2x130.3(cm)

<순례자들 1 Pilgrims 1>, 황유경, 2024, 캔버스에 유화, 오일파스텔, 162.2x130.3(cm)
황유경 Festival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기묘한 장면 속에 내가 있고 그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가면에 표정은 해독할 수 없는 기호가 되고 실체는 불분명하다. 가면 쓴 얼굴은 안과 밖을 가르고 명확한 형상 속에 환상이 스며든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이 세계를 넘어 이세계로 그들을 뒤따라간다. 하지만 이대로는 결코, 어디로든 도달하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흐름 속에서 완결이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되고, 미완성의 이야기는 계속 가야만 한다는 점에서 영원한 에너지를 갖는다. 미지의 세계에서 이곳도 저곳도 아닌 선을 따라 그저 걷는다. 두 개의 세계가 마주한 자리에 남는 모호함은 가장 선명한 푸른 빛으로 인간의 발걸음을 감싼다.
파괴된 조각들을 끌어모으면 무엇이 될까.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이어 붙인다면 어떤 결말일까. 완성되지 않은 존재들, 흩어진 조각들, 결합되지 않는 관계들. 이 잔해들은 마음껏 재배치되고 심지어는 전혀 다른 형태로 성형된다. 충돌의 끝은 또 다른 질서. 어쩌면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부서지고 조립되는 과정을 지속시키는지도 모른다. 깨진 조각들이 모여 다시 태어난다.
2025.2.
조영아 @aroze0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