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준
죽음을 품는 억겁의 시간은 우리의 리듬으로는 알 수 없다. 생이라는 노래는 커다란 악보 위를 굴러다니며 까만 잉크를 묻히는 모양새가 아닐까. 시간이 무한한 확장하는 동안 소멸하는 생은 무엇이든지 거꾸로 읽고 우기고 싸우다가 사그라든다. 시간에 변동이 없을 것이란 믿음은 한정된 우리의 감각 안에서만 유효하다. 

황효철

나의 생을 안전하게 감싸는 벽. 저 너머에는 포근한 실내가 있다. 하지만 포착되는 어느 찰나에 벽은 차원을 지운 하나의 납작한 면이다. 손으로 쌓아올린 벽돌벽은 보수가 필요하거나 꺾이거나, 소유자가 다른 지점을 접한다. 벽돌은 시간의 분절을 단위로 명확히 보여준다. 분절된 생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손에 잡힐 듯한 구조가 되어, 누일 곳이 되어 조금은 아늑하게 다가온다. 이 벽에 걷잡을 수 없는 시간을 단단히 고정하고, 기댄다. 

홍덕희

가능한 만큼 시간을 견뎌낸 눈은 더이상 분간할 수 없는 풍경을 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이 찰나로 모여서 이상적이고도 평균적인 하늘을 만든다. 더 어두운 밤과 바다의 물결을 모를리 없다. 하지만 시간 속에 잠드는 우리는 이것을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하리. 살아있는 동안의 시간을 육신을 벗은 테두리 안에 담아 다시 예술로, 압착한다.

정경식

정말로 시간이 모두 흐르면, 압착되어 만들어진 테두리마저 벗고 녹아내리는 사물들. 멀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거기, 기억에 담긴 나,를 보는 너. 일몰을 늙어감에 비유하며 우리는 시간을 시각화하고 의식한다. 저무는 빛이 아니라 안을 채우던 빛을 잃고 무너져 내릴 경계를 본다. 산화되어 부식되고 구멍이 나 겉과 속을 분간할 수 없다. 늙어가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우리만 품을 수 있던 믿음은 우리만을 저버릴 뿐이다. 

최기영

예술가란 감각을 수련하는 이들이 아닐까. 감각 입력과 운동 출력, 보편의 신체 감각을 갖고 가장 멀리 나아가기. 깃발을 어깨에 들쳐매고 남쪽 어디로 간다. 발바닥을 붙드는 찰박찰박한 바닥 아래 깊숙이 가져온 깃발을 묻는다. 무수한 진동의 프랙탈이 훑고 간 찢김, 녹아내림, 엉겨붙음을 고스란히 모은다. 이중 우리의 신체는 없고, 몸 안으로 들어온 것도 없다. 공통점이라고는 아늑하게 감싸는 이 벽, 공동의 집 안에 있다는 사실 뿐. 막대기로 천을 더 깊숙이 집에 묻고 집으로 돌아간다. 
2025.02. 
김여준 @kimyo_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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